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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20세기 최고의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역사의 전면에 그를 부활시킨다!.『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이 책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지를 떠돌았던 위대한 전기작가 츠바이크가 혼신의 노력으로 발굴해낸 16세기의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의 전기다. 1935년 독일어로 처음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폭력에 대항한 양심 - 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이다. 카스텔리오는 오랜 역사 속에서 패배자로,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의 맞수인 칼뱅은 종교개혁을 이끈 인물로, 또 개신교 신앙의 아버지로 오늘날에도 널리 추앙받고 있지만, 자신의 양심에 대한 자유를 옹호하고, 관용을 부르짖었던 카스텔리오는 역사 속에서 잊혀진 것이다. 저자는 카스텔리오를 20세기로 불러내며 그의 삶을 조명한다. 여느 전기처럼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기 보다는 ‘정신적 독재자이자 광신적인 주지주의자’였던 칼뱅과 그에 맞서 목숨을 걸었던 그를 대비시킨다. 칼뱅과 카스텔리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의 기록은 물론, 다소 정치적이면서도 생각의 관용 등을 총9장에 걸쳐 풀어낸다.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
출판
바오출판사
출판일
2009.05.04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는 위대한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품이다. 종교 개혁의 완결자 '장 칼뱅'과 듣보잡 '세바스찬 카스텔리오'에 대해 서술했다.

내용 면에서 주인공은 카스텔리오지만 분량으로 따지면 칼뱅이 주인공이다. 칼뱅은 누구인가? <기독교강요>를 쓴 위대한 종교 개혁가이다. 내게도 칼뱅은 교과서에 나오는 위인으로 훌륭하고도 위대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칼뱅이 엄청난 독재자였음을 알게 됐다. 그 자체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칼뱅이 실제로 독재자였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독재자들은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독자는 칼뱅을 통해 각자의 독재자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츠바이크는 나치에 쫓기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 그에게도 단지 히틀러와 대칭되는 독재자가 필요했을 뿐, 반드시 칼뱅일 필요는 없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까 이 책은 칼뱅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독재자에 대한 이야기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나쁜 놈 칼뱅에게 매력을 느낀다. 뭔가 인간적이면서도 이해가 가기도 하고 애정이 간다랄까. 칼뱅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여긴 자신의 이론에 다른 사람이 토를 다는 것만으로도 못 참아서 안달란 모습에서, 그러니까 그 속 좁음에 대해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물론 그의 폭력과 살인에는 통렬하게 비판하는 바이지만.

반면에 폭력에 맞섰던 진정으로 위대한 카스텔리오는 왠지 멀게 느껴졌다. 그가 훌륭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비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왜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것은 이 책이 전기라기보다 소설로 읽히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이제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서이다. 소설 속 인물에 대한 매력을 악당에게서도 느낄 수 있는 나이란 말이다. 배트맨보다 조커에게 애정을 느끼고 맥컬리 컬킨보다 도둑들이 더 불쌍하게 여겨지고 알릭세이보다 드미트리가 더 신경 쓰이는 것과 같이.

그렇다고 이 책의 교훈이 쓸모없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카스텔리오라는 상징은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카스텔리오는 독재자 칼뱅에 정면으로 맞선 인물이다. 그것은 진리를 위해 죽음을 향해 돌진했던 한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카스텔리오가 위대한 것은 칼뱅의 사상을 반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누구나 생각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사상을 심판할 수 없으며, 사상 검증은 신의 영역이지 칼뱅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속 좁은 독재자가 따박따박 바른말을 하는 천하의 싸가지를 가만두지 않은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칼뱅은 집요하고도 교묘하게 카스텔리오를 옥죄기 시작했다. 명분을 만들고 의회를 이용하고 프락치를 투입하고 함정에 빠트려 카스텔리오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카스텔리오는 끝까지 항거했지만, 얼마 안 가 칼뱅의 뜻대로 카스텔리오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칼뱅은 카스텔리오의 사망 소식을 듣고 군중 앞에서는 애도하는 척했을지도 모르지만, 분명 화장실에서 간사한 미소를 지었을 게 뻔하다.

안타깝지만 역사는 그런 칼뱅을 기억한다. 그것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기록되지 않은 카스텔리오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슈테판은 말한다. 카스텔리오 덕에 오늘날 우리는 사상의 자유를 갖게 됐다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카스텔리오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기독교적 관점에서 칼뱅은 위대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쇠사슬의 종류가 바뀌었을 뿐, 우리의 삶이 혁명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츠바이크는 카스텔리오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희생으로 인간이 좀 더 나은 자유를 누리게 됐다고 한다.

카스텔리오의 이 말은 마치 기분 좋은 거짓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말에서 진실의 힘을 믿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져 삶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말 천국이 있기 때문에 천국을 믿는 게 아니라, 천국이 있다고 생각해야만 힘겨운 삶을 견딜 수 있다.

칼뱅이 죽은 이후, 칼뱅이 세우려 했던 유토피아는 다행히 유럽 전역에 퍼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에 대항했던 듣보잡 카스텔리오의 자유사상은 전 유럽과 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를 점령했다.

물론 사상의 자유에 대한 욕망이 오직 그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겠지만, 인류가 그의 정신을 위대한 것으로 여기는 한 인류는 자유로 향해 나아갈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전기 작가 슈테판을 알게 된 것도 기쁘고, 칼뱅에 대해 제대로 보게 된 것도 즐겁다. 무엇보다 카스텔리오라는 듣보잡 인물의 숭고한 자유사상을 알 게 된 것이 가장 큰 행운이다. 역사와 인물을 이해하는 데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어 또한 기쁘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는 소설처럼 너무나 쉽고 재밌게 잘 읽혀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선물해주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고 깊고 다채롭게 만들어준 슈테판에게 감사한다. 그의 다른 책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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