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표도로 도스토예프스키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12.11.01
아버지는 3명의 여자로부터 3명의 아들을 낳고 1명의 사생아를 낳는다. 성인이 된 장남은 약혼녀를 놔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자다. 둘 사이에 암투가 벌어진다. 차남은 형의 약혼녀를 사랑한다. 막내만 모범생이다. 사생아는 집안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증오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남은 친부 살인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는다.
내가 아는 드라마 중 최고의 막장이다. 이 막장 드라마는 일본 TV에 방영되어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막장의 인기는 국경이 없나 보다. 그런데 원작이 놀랍게도, '카르마조프의 형제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가난한 집에서 그야말로 막 자랐다. 어린 시절 접했던 문화와 책들은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작가의 다른 소설 '죄와 벌'에도 가난, 폭력, 살인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B급 감성이 성격이 된 듯하다.
그래서일까? 소설이 생생하다. 책을 읽다 보면 '마동석'만 한 팔뚝이 책 밖으로 나와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멱살 잡히기 전까지는 책 읽기가 쉽지 않다. 우선 말이 너무 많다. 작가도 말이 많고 모든 캐릭터가 말이 많다. 책을 읽다 보면 수다쟁이들로 둘러싸인 느낌이다. 수많은 등장인물을 죄다 수다쟁이로 채우다 보니 소설은 자연스럽게 2천 쪽에 달하게 된다.
게다가 그 많은 등장인물 대부분은 이름이 길고 어렵다. 읽다 보면 '이노무스키', ‘저노무스키’ 하는 러시아 이름들이 계속 나오는 데 왠지 욕 같기도 하고 누가 누군지 헛갈린다.
사실 이야기 구성은 단순하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관계만 파악하면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구조다. 우선 러시아식 이름과 호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러시아 이름은 본인 이름 + 아버지 이름 +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에서 표도르는 이름이고, 미하일로비치는 아버지 이름, 도스토옙스키는 성이다.
가까운 사이는 이름만 부르고 공식적인 관계는 부칭과 이름을 같이 부른다. 정말 친한 관계는 애칭을 부른다. 애칭은 꼭 외우지 않아도 본명을 파악하면 뉘앙스가 비슷해 대충 누군지 알 수 있다.
이야기보다 등장인물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관전 포인트다. 그래서 캐릭터를 구체화시키고 표면으로 드러내기 위해 '내 마음대로' 캐스팅을 해봤다. 재미는 덤이다.
우선 아버지 표드르다. 그는 자식도 돌보지 않고 술과 여자와 돈만 좇는 파렴치한이다. 아마 죽을 때도 돈만큼은 무덤까지 싸 갖고 갈 양반이다. 정말 본능에 충실하다. 모든 게 단점인 그에게 굳이 장점을 찾자면, 적어도 위선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너무나 솔직해서 체면도 모르고 예의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광적이면서 완벽히 자기밖에 모르는 완전무결한 이기적 캐릭터를 소화할 배우로 임채무 아저씨를 캐스팅한다.
다음은 장남 드미트리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아버지와 가장 많이 닮았다. 즉흥적이고 망나니에 술과 여자를 좋아한다. 유흥을 즐기다 보니 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아버지처럼 돈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내면에는 분명 순진한 구석이 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덩치 큰 남자가 십자수를 취미로 하는 느낌이랄까. 감성이 풍부하고 의리를 중요시하며 어설프지만 자신이 가진 도덕률을 끝까지 숭고하게 지키는 인물이다.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역할에 오지호를 캐스팅한다.
차남 이반. 똑똑하긴 하나, 잘난 척 대마왕이다. 재수 없고 싹수없고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놈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캐릭터. 그래도 내면에는 나약한 구석이 있어, 막판에는 가장 신경 쓰이는 인물이다. 유지태를 캐스팅한다.
막내 알렉세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최후에 도덕적으로 지향하려는 곳에 있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모범생 그 자체다. 화도 잘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착한 마음뿐이다. 인간의 욕망을 원천적으로 별로 갖고 있지 않은 인물이다. 마치 신과 같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인격이다. 그래서 재미없다. 평면적이고. 임시완이 생각났다.
다음은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다. '스메르자'는 죽음을 의미하는 단어다. 태어날 때부터 어미를 죽이고 태어난 가장 불운한 사내다. 자신의 출생 자체가 불행이었고 삶 자체가 분노였다. 그 분노는 카르마조프 가를 향하고 있지만 가장 증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 추악한 감정을 평생 억누르며 카르마조프 가의 시중을 드는 부억데기 하인으로 산다. 영화 '형'에서 조정석의 동생으로 출연했던 엑소의 디오(도경수)를 캐스팅한다. 듣자 하니 요리도 수준급이라 하고.
다음은 카체리나. 엄청난 미인이다. 그만큼 자존심도 세다. 자신이 차인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집착의 화신이다. 체면을 지키면서 조용히 폭발하는 역할에 '수애'를 꼽는다.
마지막으로 그루센카다. 그녀는 예쁘고 애교가 많다. 변덕이 심하고 왈가닥에 말괄량이다. 그러면서 순박한 백치미 같은 느낌이 있다. '리턴'에 출연했던 윤주희를 캐스팅하겠다.
소설은 독자를 냉탕에 담갔다 온탕에 담갔다를 반복한다. 애초에 인간이 냉탕과 온탕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없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인간 개개인은 다양한 선과 다양한 악이 열렬하고 뜨겁게 달아오르는 자신의 삶 속에서 싸우고 투쟁하며 앞으로 나아갈 뿐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캐릭터들을 극단으로 몰아붙여 탄생시킨 카르마조프의 형제들. 고전의 위대함에 감탄하며 읽었다.
카르마조프적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보며 내 안의 악마와 천사를 동시에 마주하게 하는 막장 장편 소설, '카르마조프의 형제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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