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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의 바람은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에요.”_룰루 밀러 ‘방송계의 퓰리처상’ 피버디상 수상자 룰루 밀러의 사랑과 혼돈, 과학적 집착에 관한 경이롭고도 충격적인 데뷔작! 집착에 가까울 만큼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19세기 어느 과학자의 삶을 흥미롭게 좇아가는 이 책은 어느 순간 독자들을 혼돈의 한복판으로 데려가서 우리가 믿고 있던 삶의 질서에 관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하나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무엇을 잘못 알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질문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한 관계들”에 한층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이 책이 놀라운 영감과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줄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세계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물고기는(그리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에 관해 우리의 관념을 뒤집어엎으며 자유분방한 여정을 그려나간다. 사랑을 잃고 삶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데이비드 스탄 조던’을 우연히 알게 된 저자는 그가 혼돈에 맞서 싸우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매혹되어 그의 삶을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저자 역시 이 세계에서 “혼돈이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의 시기의 문제”이며, 어느 누구도 이 진리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던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이끌며, 이윽고 엄청난 충격으로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든다. 룰루 밀러가 친밀하면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들려주는 이 책은 과학에 관한 고군분투이자 사랑과 상실, 혼돈에 관한 이야기다. 나아가 신념이 어떻게 우리를 지탱해주며, 동시에 그 신념이 어떻게 유해한 것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 속 의문들을 하나하나 파헤쳐나가다 보면 독자 여러분도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더 깊고 더 특별한 인생의 비밀 한 가지와 만나게 될 것이다.

 

저자
룰루 밀러
출판
곰출판
출판일
2021.12.17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좋은 책이다.

엄밀히 말하면 독자에게 좋은 책이다. 좋은 책은 독자가 작가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작가의 생각을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는 글쓰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칸트는 좋은 철학자이지만 좋은 저술가는 아니다. 그의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독자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질문이 명확하다. 사실 답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책은 많다. 그건 쉽다. 그러나 질문이 명확한 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질문이 책 전체를 이끄는 핵심 동력의 역할을 명확하게 수행한다.

 

책의 구조 또한 투명하다. 마치 어항 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작가 룰루 밀러 자신의 삶과 19세기 인물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이 대위법처럼 진행되는 구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훌륭하다. 형식이 책의 가치를 결정하기도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구조가 재미와 흥분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어류학자이자 스탠퍼드 대학 초대 총장 <데이비드 스타 조던>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책의 제목을 보면 어떤 내용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부제를 보면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 사랑에 관한 이야기고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표현이겠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 우리의 상식을 깬 전개가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에세이인가 싶다가, 위인전 같기도 하고, 어느새 스릴러로 바뀐다. 독자는 재미에 정신 팔려 읽다 보면 르포르타주로 이어지고 생물학의 면모가 드러나는가 싶다가 마지막에는 철학적 사유로 독자의 뒤통수를 ‘빡’하고 때린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목처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로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류를 분류하는 학자이다. 무언가를 분류하는 것. 그러니까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 의도를 가지고 하는 행위이다. 룰루 밀러는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는 인간의 오만과 어리석음이 존재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의외로 방점은 '상실'이나 '사랑'이 아닌 '삶의 질서'에 찍혀 있었다.

 

이쯤 되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서점에 어느 분야에 꽂혀 있는지 궁금하다. 에세이일까? 철학일까? 인터넷 서점을 뒤져보니, 자연과학으로 분류되어 있다. 분류를 거부하는 책이 ‘자연과학’에 분류되어 있는 게 순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우주는 무질서 속에 있다. 무질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은 꾸역꾸역 질서를 부여해 왔다. 질서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부단한 노력은 인류의 발전을 가져왔다. 반대로 인간의 자유를 앗아가기도 했다.

분류는 인간의 위대한 착각이다. 분류를 지시하는 행위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오만으로 이어져 왔다. 바로, 인간의 자유를 살해해 온 것이다. 룰루 밀러는 인간이 진정으로 해방되고 자유로 나가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 만든 질서의 틀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작가이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저자 <룰루 밀러> (출처: 곰출판)

 

우리는 우주의 점의 점의 점 보다 작은 존재들이다. 점들뿐인 우리는 대체 어떻게, 왜,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가가 이 책의 질문이다. 룰루 밀러는 이 질문에 대답을 얻기 위해 완벽힌 삶을 살았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파헤친다. 어떠한 시련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조던’을 보며 그 비밀을 추적한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 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자연과학으로 분류된 이 책은 스릴러 소설 뺨친다. 놀랍게도 3번의 반전을 보여준다. 반전을 볼 때마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산산조각이 난다. 그리고 우주에서 자신의 사금파리를 찾아 헤매는 모든 인간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필자는 뒤통수가 아직도 따끔거린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답이 정해진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에게 깊은 통찰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책을 덮고도 더 오랜 사유가 이어진다. 좋은 책은 질문이 명확하고, 대답은 오랫동안 삶으로 이어지는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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