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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4321] 폴 오스터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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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1]을 읽고, 한동안 감동에 젖어 있었다. 눈물도 흘렸다. 그게 꼭 슬퍼서가 아니라, 인생의 총체적 아름다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성장기 소설 중 가장 선명하다. 어린 시절과 현재를 돌아보게 하고, 동시에 미래를 그리게 된다. 인생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한 것도 아닌데, 큰 통곡을 한 후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예상은 했지만, [4321]은 결국 폴 오스터의 유작이 되었다. 지난 4월 30일 77세를 일기로 별세 했다. 그의 죽음은 슬프지만, 오스터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되어버린 [4321]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욕3부작]과 [달의 궁전]과 같은 오스터의 작품은 대부분 신비주의를 기반으로 인간, 특히 도시인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우연, 집착, 고독, 강박에 휩싸인 인간을 매우 깊은 곳까지 추적한다. [4321]은 기존의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신비주의보다는 사실적이다. 인간 내면을 다루지만 고독과 강박보다는 우리 주변에 존재할만한 인물의 성장기를 다룬다. 과장되지 않는 평범한 그의 문체 또한 편안하다. 그간 폴 오스터의 소설을 읽어온 독자라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뿜어내는 매력은 여전히 놀랍고 재밌다.
 
[4321]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으면 내용을 따라가기 어렵다. 왜냐하면 한 인물의 4가지 삶을 병렬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중우주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택과 우연에 따른 4명의 퍼거슨을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다룬다. 퍼거슨1, 퍼거슨2, 퍼거슨3, 퍼거슨4로 정리하면서 읽어야 정리가 된다. 그러나 소설의 중반 이후를 읽다 보면 내용이 뒤섞여도 상관이 없어진다. 퍼거슨의 과거는 총체적으로 읽히고 현재는 가늠할 수 없는 커다란 지도를 그려나가는 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뉴욕 3부작]에서 도시를 걸으며 매일 지도를 그리는 인물이 등장하듯이, 인간은 환상 속에서 매일 지도를 그려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퍼거슨 역시 그의 환경과 선택에 따라 삶의 지도가 달라진다.

[4321]은 폴 오스터에게 최종적 작품이었지만, 독자는 퍼거슨과 함께 새롭게 시작해야할 인생이 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인간의 본질적 질문에 귀착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과거는 총체적이고 현재는 현실 속 환상이며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의 환경과 자신의 선택에 따라 4명의 퍼거슨의 삶이 다르듯이, 그가 겪는 세계 또한 다르게 묘사된다. 같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동일한 시대를 다루지만, 각각의 퍼거슨이 인식하는 세계 또한 다르다. 어차피 세계는 개인의 표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오스터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구조로 소설을 썼을까?
 

선택지가 둘밖에 없는 거야. 큰길과 뒷길, 그리고 각각의 도로는 장점과 단점이 있어. 큰길로 갔는데 3중 추돌 사고가 나서 한 시간 동안 차들이 꼼짝을 못 하는 거야. 그리고 그렇게 차 안에 있는 동안 뒷길 생각밖에 안 나고, 왜 그 길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만 드는 거야. 잘못된 선택을 한 자신을 원망하겠지만, 그게 잘못된 선택이 될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그런데 뒷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커다란 삼나무가 쓰러져서 지나가던 차를 덮치는 바람에, 운전사가 사망하고 도로가 세 시간 반 동안 막혀 있었다는 소식을 누가 전해 준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만약 뒷길로 갔다면 네 차가 쓰러지는 나무에 맞았을 테고, 네가 죽었을 거라고 말한다면? 아니면, 아무 나무도 쓰러지지 않고, 큰길을 택했던 게 잘못된 선택으로 밝혀진다면? 아니면, 뒷길로 갔는데 나무가 쓰러지면서 네 차 바로 앞에 가던 운전자를 덮친 거야. 너는 차 안에 앉아서 큰길로 갈 걸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쪽에는 3중 추돌 사고가 나서 어차피 약속에는 늦었을 거라는 걸 모른 채 말이야. 아니면, 3중 추돌 사고가 안 일어나고, 뒷길로 간 게 잘못된 선택이었던 거라면?

[4321] 중에서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우연을 마주하고,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어떤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더 낫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러려면 다중우주를 모두 들여다 보아야 한다. 퍼거슨3은 교통사고로 손가락 2개를 잃게 되지만, 베트남전 징집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오늘의 불행은 내일의 행운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행운은 내일의 불행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폴 오스터가 마지막 남긴 질문이다. 독자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책을 덮고 그의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 서게 되는 순간 인생의 총체적 감동이 몰려온다. 거대한 우주를 바라본 것과 같은 혜안을 얻게 된다. 
 
 
 

사진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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