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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나는 왜 살인자에게 더 눈길이 가는가 - <활자잔혹극>

활자잔혹극

 
<활자잔혹극>은 심리 스릴러와 문학적 드라마가 결합된 장르의 소설이다. 서스펜스와 추리 소설이 결합되어 독자의 흥미를 이끈다.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도덕적 딜레마를 깊이 파고들기도 한다. 선과 악은 무엇이며, 정의와 복수, 구제와 심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특징이다. 권력, 계급, 특권에 대한 문제를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30대 전후의 여성이 한 가족을 몰살하는 이야기다. 그녀는 보통의 중산층 선한 사람들을 죽인다. 그녀에 대해 설명하고 묘사하는 내용을 종합해 볼 때 그녀는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감정이 결여됐다. 공감을 못한다. 과거 병든 아버지를 죽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은 유니스이다. 작가는 유니스에 대한 서사를 최소화한다. 독자가 유니스를 동정심을 가질만한 부분을 배제했다. 독자는 작중 인물과 함께 "그 여자 정말 섬뜩하던데요. 사람 같지가 않아요."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런데 왜, 나는 유니스에게 마음이 가는 걸까? 절대 악에게. 단순히 절대 악이기 때문에? 내 본성이 악을 동조하기 때문에? 그건 아니다. 그렇다면 수년간 내려온 선악의 대결에서 대부분 선을 응원한 나의 역사를 설명할 수가 없다. 유니스가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가진 인물이어서 그럴까? 그녀의 살인 동기는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단순히 문맹이기 때문이다. 서사가 약한 그녀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은 독자가 납득하거나 이해하기 힘들다. 
 
궁금했다. 커버데일 일가의 죽음이 그리 안타깝지가 않게 느껴진 이유가. 그들은 그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일 뿐인데. 심지어 딸 멜린다가 유니스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그녀를 도우려 하지 않는가. 그런 선함을 가진 그녀의 죽음이 나는 왜 안타깝지가 않았는지. 내 본성 깊은 곳에 폭력적인 부분이 있어서일까? 단순히 커버데일 일가가 싫어서일까? 내가 계급적으로 유니스와 가깝기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문제는 멜린다의 도움 방식 자체에 있다고 생각됐다. 멜린다가 유니스를 도와주려 했던 게 진심에서 나온 선의인지, 아니면 우월한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시혜적 태도였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이다. '불쌍한 유니스, 내가 도와줘야 해' 같은 일방적 구제자의 태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움을 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유니스를 낮춰 보는 느낌이 거북했던 것이다. 
 
나는 멜린다의 선의가 가식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의식하지 못한 채 도움을 베푸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불편했다. 커버데일 가족은 겉으로는 교양 있고 도덕적인 집안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선함은 특권층의 여유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그들의 위선적인 태도가 오히려 유니스 같은 사람을 더 고립시키고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퀸의 대표곡인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 중에 '당신들은 나를 사랑해서 내게 돌을 던지는가'라는 가사가 있다. 커버데일 일가의 유니스에 대한 관심과 선의는 유니스에 대한 진짜 이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유니스의 경험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잣대로 그녀를 판단한다. 즉, 커버데일 일가의 문제는 노골적인 악인이 아니라, 특권층이 자신이 선하다고 믿으며 타인을 가르치려 드는 태도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유니스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 배경에는 억압된 고통과 사회적 불평등이 있다.
 
그렇다면 살인을 한 유니스는 단순한 악인가? 아니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는가? 그보다 유니스는 스스로를 구속하길 원했던 걸까? 아니면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길 바랐던 걸까? 과거와 운명에 굴복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벗어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존재한다. 오랜 사회적 억압 속에서 살아온 인물이 평안함을 느끼는 지점은 어디인가? 우리가 그런 인물을 구하려 할 때,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시혜적 시선을 제거하는 게 가능한가? 어쩔 수 없는 계급적 문제인가? 
 
공교롭게 철학적 질문들만 잔뜩 써 놓은 리뷰가 되어 버렸다. 사실 <활자잔혹극>은 첫 번째 문장을 읽는 순간,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드는 엄청난 위력이 있다. 아래의 첫 구절은 이 작품 전체는 물론 독자를 단단히 묶어둔다. 서스펜스적 요소가 강력하면서 심리 스릴러가 결합되면서 독자는 긴장감을 가지고 궁금증을 떨쳐내지 못한 채 끝까지 책을 읽게 된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첫 구절인 아래 인용문은 최고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서스펜스 소설 중 최고의 떡밥 중의 떡밥이다.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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