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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둔감함을 깨트리는 통로 <인생의 역사>

 
인생의 역사
* 『인생의 역사』 초판 한정으로 출고된 양장본은 현재 소진되어, 2쇄부터 무선본으로 출고되오니 도서 구입시 참고 부탁드립니다. ▣ 2023 서울국제도서전 〈다시, 이 책〉 선정 신형철 평론가의 시화(詩話) 『인생의 역사』를 2023 서울국제도서전 리커버 에디션으로 선보인다. 도서전 프로그램 〈다시, 이 책〉의 일환으로, 책이 가진 물성, 북디자이너의 감상 팁을 천천히 살펴보면서 책을 마주할 때의 첫 느낌, 첫 기억을 새로이 새겨보자는 취지에서다. 서울
저자
신형철
출판
난다
출판일
2022.10.17

 

 

시에 대한 이야기 <인생의 역사>가 반갑다. 시가 하대 받는 시대이기에 더 그렇다. 잊고 지낸 어릴 적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시 읽기가 드문 시절에 단비 같은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특유의 깊이 있는 사유와 아름다운 문장들이 담겼다. 개인의 삶과 감정, 존재의 궤적을 추적한다. 시가 우리 삶을 어떻게 비추고, 위로하고 때로는 흔들어 놓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형철의 말마따나 인생은 시고, 시는 인생이다. 사람의 감정과 삶을 다정하고 치열하게 바라본다. 

신형철은 좋은 예술은 결국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단순히 도덕적인 예술이 옳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이 인간의 고통과 타자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다루느냐, 그 감각을 통해 독자가 어떤 세계를 보게 되느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시가 아름다움만 추구하면서 현실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비윤리적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시와 삶을 연결 짓는 신형철의 방식은 늘 타자와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수렴된다. 

<인생의 역사>의 구성은 인생의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시를 소개하고, 그 시에 대한 신형철 특유의 평론을 들려준다. 함께 시를 읽고 독자와 대화하는 방식이다. 그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그의 가치관과 그가 바라보는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에 독자는 매혹된다.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이 있다면, 그것을 듣기 위해 예술이 존재한다. - <슬픔의 말들> 중


예술은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외면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 들어주는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다. 

우리는 비극을 겪은 자와 겪지 않은 자가 다른 종류의 언어를 말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윤리적 감각> 중


이 문장은 신형철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감각의 윤리'를 잘 드러낸다. 고통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의 간극을 인식하는 태도이다.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감지하고, 반응하고,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뜻한다. 철학이나 법 같은 제도적 윤리가 아니다. 감정과 인식의 가장 미세한 층위에서 작동하는 윤리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시는 그 둔감함을 깨뜨리는 통로가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동'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 멈춰 서는 감각의 예민함'이다. 보통 윤리는 규칙이나 도덕을 떠올린다. 신형철은 윤리는 이론이 아니라 감각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감각의 윤리는 인식 이전의 '진동' 같은 것이다. 

사랑은 세계에 누가 존재하는지를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 <사랑의 발명> 중


이 문장을 다시 말하면, 시는 타인의 존재를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신형철과 함께 흔들리고 함께 진동하고 싶은 분께 권한다.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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