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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흐르지 않는 도랑에 개를 버리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 <귀신들의 땅>

귀신들의 땅

 

대만, 그리고 소설

북위 약 23.5도, 동경 약 121도. 중국 본토의 동쪽, 필리핀의 북쪽, 일본 오키나와의 남서쪽에 위치. 우리나라에서는 비행기로 약 2시간 30분 거리. 덥고 습한 열대 기후. 쫄깃한 타피오카 펄이 들어간 달콤한 버블티. 육즙이 가득한 작은 만두, 샤오롱바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도시 '지우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대만은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다. 1987년까지 계엄령으로 철저한 반공주의 체제를 유지했고, 반도체와 전자 산업 중심으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성장했다. 1996년에 이르러 첫 번째 직선제 대선을 실시했고, 2000년에 들어서 국민당의 독점이 깨졌다. 굴곡진 대만의 현대사가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하다.
 
흥미로운 대만 소설이 나왔다, 바로 <귀신들의 땅>. 작가는 천쓰홍.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예 작가이다. 대만의 영화배우이기도 하다. 영화배우가 쓴 대만 소설. 과연 궁금하다. 생소한 대만 소설. 배우가 쓴 소설이라는 선입견. 촌스러운 표지 디자인. 판타지일까. 어설프려면, 차라리 공포물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마주한 <귀신들의 땅>은 2020년에 대만의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귀신들의 땅>은 대만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천 씨 가족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독특한 구성과 깊이 있는 주제로 독자로 하여금 많은 사유와 의문을 품게 한다. 이야기는 음력 7월의 중원절, 즉 귀문이 열리는 시기에 천 씨 집안의 막내아들 톈홍이 고향인 용징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톈홍은 독일에서 연인 살해 혐의로 복역한 후 귀향한 인물이다. 그의 귀환을 통해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용징'이라는 문체를 타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용징'은 안개가 자주 끼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골 마을이다. 귀신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며, 현대적 발전에서 소외된 곳이다. 문체는 소설의 배경과 일치한다. 무척이나 '용징'스럽다. 문장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용징'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착각이 든다. 마치 귀신의 몸을 하고, 문장과 문장에 올라타 안개를 헤치며 하나하나 목격해 나아가는 듯하다. '용징'의 방문은 새롭고, 두렵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묘사와 비유, 직설적이고 생동감 있게 나아가는 문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인위적이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날 것의 문장들이 날카롭다. 뒤로 가는 문체, 앞보다 걸어온 뒤의 흔적이 더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과수원에는 야트막한 올타리가 있었고, 안에는 양타오 나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마침 꽃이 필 때라 꽃잎이 다섯 개인 작은 자줏빛 꽃들이 가지를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꽃은 무척이나 수줍은 모습이었다. 과수원 안은 아주 깨끗했다. 땅바닥에 말라비틀어진 잎새 하나 없었다. 밖은 방자한 한여름이지만, 이곳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대기에 새콤달콤한 과일 향기가 가득했다. 그는 가장 굵은 나무를 하나 골라 기어 올라갔다.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소리가 날까 두려웠다. 오늘도 술래는 그를 맨 마지막에 찾게 될 것이다. 당시 그는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구석이고, 자신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귀신들의 땅> 중에서 - 63페이지

 
 
구성은 크게 3부, 각 부마다 15개, 총 45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각 에피소드마다 화자가 변경된다. 장르는 공포가 아닌 역사 소설이다. 서술 방식은 다분히 스릴러다. 천 씨 일가의 아홉 명의 화자가 각자의 기억으로 과거를 회상한다. 독자는 읽으면서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게 된다. '용징'의 분위기처럼 가득한 안갯속을 한 발, 한 발 내디디면서 하나씩 하나씩 뚜껑을 열어가게 된다. 퍼즐이 맞혀지면서 완성되어 가는 그림, 반전과 놀람. 스릴과 전율에 빠져 든다. 마지막 장 퍼즐이 맞혀지는 순간, 가슴은 철렁 내려앉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고작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역사는 거대 담론이 아닌 아주 사적인 감정으로 움직였던 것인가. 책을 덮는 순간 대답이 아닌 질문이 시작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귀신은 왜 탄생하는가?

귀신. 귀신이라는 대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귀신들의 땅>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먼저, 귀신의 의미부터 짚고 넘어가자. 귀신이란 무엇인가? 귀신은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혼령이 이승을 떠도는 존재를 말한다. 여기서 방점은 '억울하게'이다. 억울. '억울'은 부당한 일을 당했거나 잘못된 대우를 받아서 마음이 답답하고 원통한 상태를 의미한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계층은 주로 사회적 약자이거나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농민, 노동자, 여성, 소수자, 하층민 같은 계급을 가진 사람들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적, 사회적 대응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럴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귀신은 계급적이다. 억압과 폭력의 산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억울한 귀신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분명 지배계급이 떠오른다. 맞다, 지배계급.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귀신들의 땅>의 대나무 숲에서 나오는 여자 귀신의 유래를 살펴보자. 한 여자가 일본군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여자는 남편에게 쫓겨나고,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난다. 결국 대나무 숲에서 목을 매 귀신이 된다. 
 
먼저, 지배계급의 성폭행이 있었다. 그다음, 성폭행당한 여자는 불결하다는 이데올로기가 있다. 그다음, 이데올로기로부터 지배받는 계급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다. 마을 사람들은 여자를 내쫓는다. 결국 귀신은 우리 모두가 만드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귀신은 우리 모두에게 두려운 존재가 된다. 우리는 귀신 앞에 모두 죄인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는 불결하다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부모는 톈홍을 때리기만 했다. 아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는 그 더럽고 추한, 자신이 만들어 놓은 죽음과 이별, 엄마의 모욕과 가혹한 폭력을 잊지 않았다. 엄마가 그를 때릴 때면 주먹은 칼이 되고 발길질은 점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매섭고 흉악한 것은 역시 입이었다. 엄마는 타이완 사투리로 온갖 욕을 쏟아 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불처럼 뜨거웠다. 그는 맞으면서 단 한 번도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엄마에게 미안했다. 자신이 변태고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천 씨 집 안이 무너진 것은 전적으로 그의 탓이었다. 그를 낳은 것은 죄를 지은 것이었다. 애당초 아들을 하나만 낳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귀신들의 땅> 중에서 - 337페이지

 
여기서 귀신에 대한 질문과 저항이 생긴다. 폭력과 억압의 이데올로기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폭력과 억압이 일상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때 인간의 잔인성 또한 일상화된다. 아래 본문을 보면 흐르지 않는 도랑에 개를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잔인함이 일상이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잔인함을 느끼지도 못하는 잔인함을 갖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두려운 일이다. 

고양이가 죽으면 나무에 매달고, 개가 죽으면 흐르는 물에 던진다는 말이 있었다. 엄마가 오토바이를 몰았고, 그는 죽은 개를 꼭 안고 뒷좌석에 탔다. 도랑으로 가서 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도랑의 귀신이 무서워 울음을 터뜨렸지만 엄마는 그에게 빨리 개를 도랑에 던지라고 재촉했다. 도랑은 이미 죽어 있었다. 흐르지 않았다. (중략) 그는 이웃집 누렁이의 썩은 사체를 알아보고 울었다. 안고 있는 개를 도랑에 던지고 싶지 않았던 그는 개를 땅에 묻고 묘비를 세워주자고 말했다. 엄마가 개를 확 빼앗더니 죽어서 흐르지 않는 물에 던져 버렸다. (중략) 그는 꿈에서 늘 개를 버렸던 도랑을 보았지만, 귀신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른이 된 그는 귀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귀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가장 잔인한 것은 인간이었다.
<귀신들의 땅> 중에서 - 18페이지

 
 

부조리에 대해

작품 안에 '부조리'라는 단어가 몇 번 언급된다. 천쓰홍은 '부조리'를 명확히 인지하고 사용했다. 부조리는 무엇인가? 카뮈는 인간의 본성과 세계가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는 순간을 '부조리'라 말했다. '부조리'에 대한 소설 <이방인>이 철학적이라면, <귀신들의 땅>은 역사적이다. 다분히 인간적이고 사실적이다. 동성애자는 '용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동성애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세계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부조리'가 생긴다. 천쓰홍은 여러 상황들 속에서 '부조리'를 찾아 밝히고 드러내고 명명한다. 아래 본문을 살펴보면 용징과 술 취한 하마, 신성한 송가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 등은 부조리한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텐홍이 참지 못하고 빙긋이 웃었다. 황당하고 부조리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뚱뚱한 하마가 용징 거리를 지나다니다가 결국 술에 취해 논밭에 쓰러져 있다니!
<귀신들의 땅> 중에서 - 388페이지

 

꼭두새벽부터 독경이라니! 도축용 칼이 돼지의 몸 안을 파고들자 돼지는 처연한 비명을 질렀다. 죽기 직전의 돼지가 외치는 소리는 건너편 청자오마와 음량을 겨루는 것 같았다. 돼지가 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자 독경단의 데시벨도 더 올라갔다. 돼지의 비명과 독경의 박자가 합쳐져 서로 견제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운 율과 리듬이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 신성한 송가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서로를 보완하고 보조하면서 황당하고 부조리한 노래를 불렀다. 경찰이 이 작은 시골에 와서 처음 들은 노래가 바로 이 노래였다.
<귀신들의 땅> 중에서 - 469페이지

 
'부조리'한 삶이지만, 카뮈의 조언대로 등장인물 대부분은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혹은 놔두고 삶을 계속 이어간다. 남편의 도박, 폭력, 무의미를 놔두고 살아간다.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자살이 삶보다 더 쉬울 거라는 카뮈의 예상이 틀렸기 때문이겠지만, 계속 살아갈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청량하게 울어대는 개구리 때문일까? 

남편은 묘당을 빠져나가 논밭으로 도망쳤다. 그녀는 식칼을 들고 뒤쫓아 갔고 경찰도 뒤에서 삐뽀삐뽀 경적을 울리면서 따라왔다. 그녀가 밭을 가로질러 국화밭과 옹채밭을 지날 때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 구급차가 달려왔고 그녀는 옹채밭에서 아기를 낳았다. 그녀는 그날 밤 밭에서 개구리들이 청량하게 울어댔던 걸 기억했다. 그녀가 아기를 낳으면서 질러 대는 소리에 화음을 넣는 것 같았다.
<귀신들의 땅> 중에서 - 121페이지

 
자살하지 않고 사는 것 자체가 저항일 수 있을까? 조용히 부조리를 받아들이는 행동은 소극적 저항일까? 체념일까? 

천홍은 세 누나가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베이컨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빨갛고 바삭바삭하면서 기름기가 흐르는 베이컨. 누나 들은 아주 오래 말다툼을 하지 않은 터였다. 수메이는 남편과 말을 하지 않는 상태이고, 수리는 남편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으며, 수칭은 조용히 남편의 주먹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귀신들의 땅> 중에서 - 431페이지

 

귀신에게는 귀신의 역할이 있다.

용징은 음침하고 기괴하며 척박한 땅으로 묘사된다. 버려진 땅이다. 더 이상 개발도 발전도 없는 곳으로, 귀신이 많이 사는 음침한 마을이다. 본문에 의하면 "죽음이 불길하고 깨끗하지 못해서 인간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묘사가 있다. 처음에 귀신은 무서운 것, 무조건 도망쳐야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인간 세상의 질서라는 게 무엇인가. 결국 권력자 스스로의 이권을 위해 조작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권력자가 마련한 덫이다. 귀신은 덫에 걸린 사람들이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폭력과 억압의 이데올로기는 유전된다는 사실이다. 제사상에 음식을 잘못 올렸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뺨을 갈긴다. 며느리는 엄마가 되어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딸들의 뺨을 갈긴다. 어머니 아찬은 단순한 가해자가 아니라 동시에 억압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는 폭력을 행사하지만, 그 자신도 더 거대한 폭력의 구조 속에서 희생된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귀신들의 땅>은 폭력을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고, 폭력이 어떻게 연쇄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아찬 같은 인물은 처음부터 폭력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혹은 억압된 환경 속에서 그렇게 행동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억압받던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개인이 그 구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폭력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아찬은 선택지가 있었을까? 아니면 그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귀신들의 땅>은 단순히 과거를 고발하는 소설이 아니라, 폭력의 지속성과 그 순환을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폭력과 억압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귀신의 역할이 필요하다. 대나무 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역할말이다.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것. 사람들이 잊지 않게, 겁을 주는 것. 나, 여기 있었다고. 나 당신들의 억압과 폭력으로 희생되었다고. <귀신들의 땅>은 '억압과 폭력의 역사는 망각될 수 없다'는 단순하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넘어선다. 오히려 망각될 수 있기에, 우리에게는 귀신의 부활과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우리는 귀신을 만나야 한다. 귀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야 한다. 귀신을 보고 놀라고, 이야기하고 혹은 맞서 싸워,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나의 해방, 이것이 바로 귀신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며, 역사 공부의 목적이다. 
 

아픔의 기억으로 등불을

<귀신들의 땅>은 천 씨네 가족을 통해 폭력과 억압의 기억에서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망각되지 않은 역사와 억압받은 존재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작품이다. 과거의 비극을 잊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역사 속 개인들의 고통을 기억해야 하는지. 역사를 기억하는 과정에서 어떤 진실은 사라지고, 어떤 기억은 선택적으로 남는지. 폭력과 억압 속에서도 인간은 어떻게 존엄을 유지하는지. 과거는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복잡하고 끈질긴 사유를 품게 된다. 
 
천쓰홍은 말한다. 귀신을 보고 더 이상 도망가지 말라고. 귀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억압과 폭력의 이데올로기의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잊힌 이야기들을 깨워야 한다. 이미 죽은 도랑에 개를 버리는 일을 멈춰야 한다. 귀신의 목소리가 시간의 강을 거슬러 흐르게 하기 때문이다. 귀신의 이야기는 결국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된다. 
 
천 씨 가족의 남매들은 부조리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 그저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단순하다. 흩어져 살던 남매는 아주 오랜만에 모여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기억은 그 자체로 역사이다. 해석이고 판단이다. 천 씨 가의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은 어쩌면 우리의 역사를 서술하고 기억하는 방식과 닮았다. 기억은 부분적이고, 왜곡되고, 오해된다. 역사는 대의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매우 사소한 사적 감정이 매우 주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진실은 각자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착각은 역사가 되고 역사는 사실이 된다.
 
그러나 사건은 왜곡될지라도 아픔의 기억은 남는다. 폭력적인 이데올로기는 종종 망각과 왜곡을 통해 유지된다. 과거의 피해를 잊게 하거나,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들의 땅>처럼 억압받은 자들의 기억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일이 중요하다.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라는 말이 있지만, 패자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드러낼 때 기존 이데올로기에 균열이 생긴다.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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