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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이별의 공허를 채우는 음악같은 이야기 <음악소설집>

음악소설집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악과 예술에 관한 책을 만드는 출판사 프란츠가 기획하여 펴낸 책, 음악소설집. 참여한 작가는 무려 김애란, 김연수,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 한국을 대표하는 걸출한 작가들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당장 읽고 싶어진다.
 
음악소설집은 5명의 작가가 음악을 소재로 자신의 색깔대로 쓴 앤솔로지이다. 음악은 삶의 그림자이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 삶과 음악에 대한 다섯 편의 단편 소설. 삶은 음악을 통해 완성되는 것일까, 혹은 음악이 삶을 통해 완성되는 것일까. 누구나 내 인생의 OST를 가지고 있다. 그 음악은 같은 정서를 만들기도 하고, 또 각자의 고유한 사금파리가 되기도 한다. 
 
음악소설집은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 같은 소설이다. 비 오는 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듣는 음악 말이다. 장례식에서 나오는 길이거나, 면접에서 떨어졌거나, 혹은 애인과 헤어졌거나, 뭐, 그런 날에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같은 소설이다. 창밖에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 나의 사연과 그들의 사연이 우산에 가려져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결국 어디론가 간다, 혹은 갈 수 밖에 없는 당혹감. 음악소설집은 그런 소설이다.
 
음악소설집은 죽음, 이별, 상실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어둡지 않다. 오히려 경쾌함이 있다. 툴툴 털고 일어서야 하는 인위적인 경쾌함일지라도, 그 경쾌함이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생의 공허함을 드러내고, 그 공간을 음악으로 채운다. 슬픔을 깊이 파고들거나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그저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음악처럼 들려준다. 그게 인생의 진실인 것처럼.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오해와 이해에 대한 이야기다. 노래 'Love Hurts' 중 'I'm young ~'이라는 가사를 한국말로 그대로 듣고 '안녕'이라고 오해한 에피소드가 소설의 배경이 된다. 언어는 소통의 최고 수단이지만, 오해와 왜곡을 낳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관계와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시 김애란 작가답게 관계의 서성거림을 엿볼 수 있다.
 
김연수 작가의 <수면 위로>는 제목 그대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 오라는 이야기다. 고통이 더 고통스러운 것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길이 없다고 여길 때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마음가짐을 바꾸세요' 하고 작가가 말하고 있다. 그러나 메시지는 힘을 얻지 못하고 이야기 속에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이야기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다만 소설에서 소개하는 오므라이스는 꼭 먹어보고 싶어진다. 
 
윤성희 작가의 <자장가>는 여학생이 우연히 교통사고로 죽고 귀신이 되어 엄마를 만나는 이야기다. 죽기 전과 죽은 후의 감정 차이가 거의 없다. 혼이 되어서도 노래방에 가고 떡볶이 집에 간다. 어머니의 슬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혼이 된 아이가 엄마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역시 덤덤하다. 이별과 죽음의 아픔을 후비지 않고 일상처럼 그려내고 있다.
 
은희경 작가의 <웨더링>. 원하지 않았지만 4인석에 앉아 함께 기차 여행을 하게 된 노인, 기욱, 인선, 준희.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서로 얽히기를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노인이 악보를 꺼내 본다. 나머지 세 사람은 악보를 힐끗 본다. 제목은 오케스트라 <행성>. 악보를 보고 각자의 기억을 떠올린다. 인선은 이별을 떠올린다. 기욱은 상실, 준희는 공허함을,  노인은 죽음을 떠올린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것 같다. 기차가 도착하자 비가 내린다. 네 사람이 기차에서 내리면서 삶도 함께 새롭게 시작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행성>이라는 음악 설정이 신비감을 주면서 끝까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편혜영의 <초록 스웨터>는 경주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의 이야기다. 경주는 어머니가 완성하지 못한 스웨터를 마저 뜨기 시작한다. 룸메이트가 이어서 뜨고 애인이 뜨기도 한다. 룸메이트도 애인도 떠나고, 어머니의 친구가 스웨터를 완성한다. 어머니 친구가 어머니가 부른 노래방 테이프를 경주에게 건넨다. 스웨터는 경주가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완성되고, 그 시작은 어머니임을 깨닫는다. 
 
다섯 편의 소설이 모두 음악 말고도 이별과 성장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삶이 그러하지 않은가. 이별하고 이겨내고 성장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아픔을 참아내는 것인지, 이겨내는 것인지, 혹은 모른 체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처럼 덤덤히 살아간다. 
 
만남과 이별에는 상황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음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나이를 먹어가는 일까지 모두, 우리가 감내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종종 맞닥뜨리는 일들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음악을 통해 더 분명해지거나 희미해진다. 마치 지나온 과거처럼 더 아름다워지거나 더 진실에 가까워진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한 번 더 생각나게 하고, 또 한 번 더 부르게 싶게 만드는 소설, 음악소설집을 읽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들었던 음악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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