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7.5 (2017.02.02 개봉)
- 감독
- 드니 빌뇌브
- 출연
-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포레스트 휘태커, 마이클 스털버그, 나탈리 티볼트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 몬테나 평원, 그 위에 떠 있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모양의 쉘, 안갯속 외계인, 신비로운 문자 표현, 플래시백 연출, 다소 어둡고 낮은 채도, 요한 요한손의 음악, 경이로운 설정. 테드 창의 단편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컨택트>는 신비롭고 독창적이며 여자의 얼굴을 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이다.
기존의 SF 영화처럼 지구 정복이나 히어로, 레이저 총은 등장하지 않는다. 폭력적인 우주 괴물은 물론, 영어를 우주 공용어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상대성이론과 같은 어려운 과학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스토리 전개도 없다. 이야기를 다루는 과학적 태도는 매우 엄격하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차라리 과감히 생략했기에 더 과학적이다. 그리고 사실적이다. 지구에 UFO가 왔다면 벌어질 수 있는 인류의 반응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지구에 정박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쉘처럼 영화는 느리게 흘러간다.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이 영화에서 서사는 중요하지 않다. 존재와 소통의 이해를 풀어가는 지적 활동이 더 중요한 요소이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외계인과 대화를 시도해 나가는 이야기 전개가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영화는 12개의 쉘이 지구 곳곳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외계인은 어떠한 메시지도 주지 않고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저 지구에 정박해 있을 뿐이다. 인류는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지구에 왔는지 두렵고 궁금하다. 언론은 UFO가 12개나 온 것은 호의적인 방문이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사재기가 시작되고 약탈과 범죄가 판을 친다. 전 세계 금융 시장이 붕괴되고, 비행 물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라며 곳곳에 대규모 집회가 일어난다.

미국 정부는 세계 최고의 언어 학자인 루이스 뱅크스(에이스 아담스 분)와 이론 물리학자 이안 도넬리(제레미 레너 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들이 온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라는 것이다. 루이스와 이안은 쉘의 내부에 들어가 정체모를 외계인과 접촉한다. 외계인은 안갯속에서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외계인은 발이 7개 달린 거대한 문어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조심스럽지만 왠지 공포스럽지는 않다.
이제 루이스는 그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 체계가 완전히 달라 처음에는 난항을 겪는다. 그래서 두 번째 만남부터 문자를 활용하기로 한다. 루이스는 그들의 문자 코드를 번역해 나가면서 서서히 그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루이스는 언어학자이면서도 이 영화에서 열린 사고를 가지고 가장 소통을 잘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녀의 집을 온통 유리창으로 한 설정은 그녀의 캐릭터를 암시한다.
루이스는 외계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알 수 없는 환영을 보게 된다. 관객은 루이스가 보는 환영이 과거에 루이스의 죽은 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후반에 가서야 그것이 루이스가 미래를 본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반전이다. 그러나 반전은 ‘놀람’보다는 ‘이해’로 다가온다.

시간에 매여 있지 않은 기억. 이것이 이 영화의 첫 번째 키워드이다. 외계인의 문자는 시제가 없고 그들의 문자로 사고를 하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설정이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인류의 시간 선 상에서 이해하지 않는다. 원에 가까운 문자처럼 미래는 과거가 되기도 하고, 다시 과거는 미래가 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다시 인트로를 보면, 그 의미가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루이스가 딸을 낳아 처음 안을 때 ‘컴백 투 미’라고 하는 첫 장면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후에 딸의 이름을 ‘HANNAH’인 대칭으로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미래를 기억하는 루이스에게 미래는 과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잘못된 사건들에 대한 부정이 아닌 삶 자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기 시작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우리의 삶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를 살 수밖에 없다. 다소 허무주의로 들릴 수 있지만, 적극적인 받아들임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루이스는 인류와 외계인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미래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자신의 딸에 대해서는 미래의 기억을 그대로 수용한다.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 루이스는 모든 걸 받아들인다.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한다.
“이안,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겠어요?”
“그보단, 내가 요즘 느끼는 걸 얘기할게요. 난 평생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살았소. 근데 요즘 제일 놀라운 건 그들을 만난 게 아니고 당신을 만난 거요.”
“당신 품이 이렇게 따뜻한 걸 잊고 있었어.”

<컨택트>의 원제는 <Arrival>이다. ‘Arrival’은 ‘도착’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의도'가 '도착' 했을 때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일상 속에서, 연인 사이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도, 그리고 인류의 중요한 사건에서도. 하물며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는 외계인과 하는 소통은 당연히 많은 오류를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성급하다. 그들이 지구에 온 것은 선물을 주기 위함이었지만, 그들을 보고 인류는 두려움을 느끼고 전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원제인 <Arrival>을 놔두고 <컨택트>를 제목으로 정한 점은 다소 아쉽다.
외계인이 전하는 메시지 ‘Weapon’에 대한 해석은 이 영화의 두 번째 키워드이다. 루이스와 딸이 장난치는 장면에서 손가락 총은 결코 무기가 아니다. 그때에 '총'은 그저 ‘사랑’ 일뿐이다. 외계인들 역시 ‘무기’를 ‘선물’로 의도했지만, 인류는 ‘공격’으로 이해해 전쟁 촉발 직전까지 간다. 영화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고 설정한다. 많은 오해를 낳고 심지어 전쟁과 학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외계인들의 언어에 비교하면 인간의 언어는 그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이안이 외계인의 이름을 ‘애봇’과 ‘코스텔로’로 지은 것도 그런 이유이다. 1940년대 할리우드 코미디 그룹 ‘애봇과 코스텔로’ 멤버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들은 말장난하는 만담 개그 ‘Who’s on First?’로 유명하다. 이것은 인간과 외계인이 대화하면서 서로 잘 못 이해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는 루이스와 웨버 대령(포르세트 휘태커 분)의 3번의 대화를 통해서도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소통의 한계와 비극을 엿볼 수 있다.
“2년 전, 저희 정보과에 와서 페르시아어를 해독해주셨죠. 이라크 반군 동영상 해독이오.”
“그 덕에 그 반군들 다 사살됐죠.”
“버클리의 댄버스 교수에게 부탁하실 건가요?”
“아마도요.”
“그에게 물어보세요. 산스크리티어로 전쟁이 뭔지, 그 뜻이 뭔지.”
“가비스티, ‘다툼’이란 뜻이래요. 당신의 해석은 뭔데요?”
“더 많은 암소를 원한다.”
“가방 싸요.”
“1770년 제임스 쿡 선장의 배가 호주 해변에 좌초했죠. 그들은 육지에 상륙, 원주민들을 만났어요. 선원 하나가, 새끼를 배에 넣고 뛰어다니는 동물을 가리키며 뭐냐고 물었더니 원주민이 말했죠, ‘캥거루’.”
“요점이 뭐죠?”
“나중에야 그들은 알게 됐죠. 캥거루가 ‘뭐?’란 뜻인걸."

루이스와 이안이 애봇과 코스텔로와 소통할 때 유리 같은 것으로 가로막혀 있다. 여전히 소통의 장벽이 존재한다. 영화 후반, 루이스는 그들의 진실과 직면하기 위해 혼자서 쉘에 들어간다. 도착한 쉘에서 코스텔로와 만난다. 이제 유리는 없다. 애봇도 없다. 코스텔로는 애봇이 죽음의 과정에 들어갔다고 한다. '죽음의 과정'이란 표현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지 않는 표현이다. 이제 루이스와 코스텔로가 1:1로 만난다. 비로소 코스텔로의 진실된 메시지를 듣게 된다.
영화는 미국 몬타나에 정박한 쉘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 몬타나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디언 전쟁이 2번이나 일어났던 곳이다. 그것과 영화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외계인이 전하는 ‘화합’의 메시지를 볼 때 어떤 연관성이 있나 하고 추측하게 된다. 인류가 저지른 정복의 역사는 제로섬 게임이었다. 기존의 SF 영화도 제로섬 게임이다. 다른 민족을 정복하거나, 지구를 침략하거나, 외계인을 무찌르거나.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화합한다면 아무도 지지 않고 모두가 이기는 논제로 섬 게임이 된다는 것이 '애봇’과 '코스텔로’의 메시지라고 영화는 밝힌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루이스의 내레이션과 함께 리뷰를 마무리하겠다.
난 이날이 네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었어. 추억은 이상한 거야. 생각과는 다르게 기억이 돼. 우린 너무 시간에 매여있어. 그 순서에. 네 삶의 모든 순간이 기억나. 이젠 내게 처음과 끝이 별 의미가 없어. 네 삶 너머에도 너의 이야기는 존재하니까. 그들이 왔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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