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6.6 (2019.09.25 개봉)
- 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에밀 허쉬, 마가렛 퀄리, 티모시 올리펀트, 줄리아 버터스, 오스틴 버틀러, 다코타 패닝, 브루스 던, 마이크 모, 루크 페리, 데미안 루이스, 알 파치노, 커트 러셀, 클립튼 콜린스 주니어, 팀 로스
나는 가끔 한국 영화가 답답하다. 주인공이 원수를 만났을 때 당장 죽여버리지 않고, 질질 끌다가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 26년에서는 부모 원수의 머리통에 총을 겨누고도 '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것도 거의 5분 이상 망설이다가, 결국 놓치고 만다. 정말, 답답하다. 확, 싸 버리지.
난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어벤저스를 봤다. 헐크가 악당 로키를 만나자마자, 온갖 변명을 씨부리는 로키를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바로 한방 날리고, 또 한방 날리고, 또 한방 날리는 모습이 나왔다. 그야말로 통쾌 그 자체였다. 완전, 완전 시원했다.
보복적 폭력을 예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참음' 철학이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다. 만약 동양 철학이 평화를 더 사랑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그게 더 위대할 수도 있다. 그, 답답했던 대통령을 향해 우리 국민이 보여줬던 평화 시위는 정말 위대함 그 자체였다. 물론 그 위대함이 저 악당들을 반성하게 만드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지만.
만약 우리의 악당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나는 당연히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그게 안된다면 적어도 뒤에서 욕하거나 상상할 수 있게만이라도 허용해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나마 악당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에 대해 넉넉히 허용하고 싶다.
악당들이 맞아 죽는 걸 보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 악당이 사실적이고 구체적일수록 좋다. 그게 가끔 잔인하고 폭력적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결론을 말하면 난 악당을 그냥 조지는 영화가 좋다.
그런 면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좋아한다. 정말이지 최고다. 그처럼 악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응징하는 자가 있을까. 악을 악보다 더 악하게 응징한다.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죽인다. 찍고, 처박고, 쑤시고, 발라버린다. 코가 깨지고, 이빨이 나가고, 피가 사방으로 튄다. 끔찍하고 잔인하다. 최고다.
타란티노 영화에서는 언제나 누구나 인정하는 악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를 정말 악보다 더 악마처럼 사악하게 응징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착한 놈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저 아주 나쁜 놈과 더 나쁜 놈과 최고 나쁜 놈이 있을 뿐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는 '히틀러와 나치'가,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는 흑인들을 개보다 더 못한 노예 취급하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철저하게 응징해야 할 악마로 등장한다. 물론 '펄프 픽션'이나 '헤이트 풀 8'처럼 명확한 응징 대상자 없이, 전부 최고 나쁜 놈들만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폭력의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 아니, 관객에게 폭력에 대한 정당성, 그보다는 관객에게 최소한의 죄의식이 들지 않고, '통쾌감' 같은 걸 선사하는 듯한, 그러니까 관객을 폭력의 공범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자신의 영화를 폭력의 비난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폭력의 거리낌과 죄책감이 덜한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통쾌감을 준다.
최근에 개봉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도 응징할 악마가 등장한다. 바로 '찰스 맨스 패밀리'. 사실 난 영화를 볼 때 '찰스 맨스'가 누군지도 몰랐다. 영화를 보고 찾아봤더니 '찰스 맨스 패밀리'는 1960년대를 주름잡던 미친, 개 사이코, 살인마들이었다.
영화는 1969년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다. 찰스의 추종세력인 애송이 히피족 4명이 유명 감독이었던 로만 폴란스키의 집을 습격해, 당시 로만 폴란스키는 영화 촬영으로 집을 비웠다, 그의 아내이자 신인 배우였던 '샤론 테이트'와 그녀와 함께 집에 있던 친구 등 5명을 무참히 살해한다. 칼로 쑤시고, 난도질하고, 옷을 벗기고, 메달아 놓고, 질질 끌고 다니기까지 했다. 당시 샤론은 임신 중이었는데, 샤론이 아이만을 살려달라고 빌자, 그들은 너에게 베풀 자비란 없다며 칼로 7방을 더 찔러 죽였다고 한다. 영화가 아닌 실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사실 그들은 이 사건 외에도 살인을 밥먹듯이 저지르고 다녔다. 나중에 찰스 맨슨은 배후세력으로 잡혀 사형 선고를 받는다. 얼마 후 캘리포니아 주의 살인 제도가 폐지돼면서 그는 목숨을 건진다. 더럽게 운이 좋은 놈이다. 맨슨은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최근까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2017년 11월 19일 자연사했다. 희대의 악마에게 더없는 행운이다.
찰스에게도 핑곗거리는 있다고 본다. 물론 그것이 그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겠지만, 뭐, 그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그의 성장 배경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된다.
찰스는 불행한 아이였다. 어릴 때 엄마는 매춘이었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성행위를 하기도 했다. 엄마는 어린 찰스를 인력 시장에 팔아버리려고도 했다. 어릴 때 지독히 사랑받지 못한 찰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집을 나오는 것이었다. 찰스는 집을 나와 도둑질 등을 일삼다가 교도소를 들락거린다.
난 사실 이런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범죄를 저질러도 그를 걱정할 사람이 없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를 때 가장 걸리는 게 가족일 텐데, 그에게는 그런 게 애초에 없었다. 게다가 그런 부류는 대부분 애정결핍을 앓는다.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인정 받아야만 한다.
그는 히피들과 어울리다 그들의 리더가 된다. 사실 리더라기보다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에 더 가깝다. 당시 히피족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마약을 하고 그와 성교하기 위해 안달랐다고 하니 말이다.
찰스는 작곡도 잘했다고 한다. 비치 보이스의 'Never Learn Not To Love'는 그가 작곡한 노래다. 사실 찰스는 로만 폴란스키가를 공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찰스는 그가 작곡한 노래를 음반 제작자인 '테리 멜처'에게 들려준다. 그러나 테리 멜처는, '뻐킹 갓 뗌 쓰뤠기'라며 욕을 한다. 원래 자존감이 몹시 낮았던 맨슨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그를 죽이기 위해 20대 안팎의 애송이들을 그의 집으로 보낸다. 그런데 테리는 이사 가고, 대신 로만 폴란스키 가족이 이사해 왔던 것이다. 샤론 테이트 사건은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일어났다.
우리의 정말 사악하고 악마 같은 타란티노 감독. 그가 찰스 맨슨 패밀리를 가만 둘리가 있겠는가. 영화 바스터즈에서 극악무도하게 잔인했던 덜 나쁜 브래드 피트 형님을 등장시켜 히피 패밀리들을 개박살 낸다. 그리고 피트 형님에게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안겨준다.
이 개박살 나는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나는 정말로 타란티노의 유일한 가족영화가 나왔나 했다.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전혀 타란티노 답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10분은 끝내줬다. 타란티노의 부활. 그는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피가 난자하고 얼굴이 다 깨져버리고, 거시기를 물어뜯는 장면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와우, 뻐킹 크레이지, 까뗌.
물론 나도 보면서, 찝찝하고, 더럽고, 잔인함을 느낀다. 하지만 근데, 난, 정말이지 그 폭력이 좋다. 특히 그런 폭력이 나오기 전까지의 긴장감이 좋다. 타란티노는 영화 내내 끌고 가는 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 천부적이다. 아, 그게 그의 매력이다. 만약 내가 찰스 맨슨을 알았다면 더 긴장감 타며, 더 재밌게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을 모르고 봐서, 처음 앞에는 지루했다
TV에 태극기 부대가 나온다. 타란티노가 기생충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타란티노가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우리나라 감독이었다면, 그래서 영화 26년을 찍었다면, 정말 어땠을까 상상도 해봤다. 정말이지 통쾌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펄프픽션에서처럼 45구경 총으로 대가리를 날려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 말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 안에 아무래도 악마가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가. 만약에,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에 말이다, 당신 가족이 만약에, 만약에 M16으로, 그러니까 이마에 총알이 박혀 그대로 즉사했다면, 당신은 과연 어디까지 상상하게 될까? 영화 26년을 보고 어떤 상상을 할까? 그 순간 타란티노나 헐크가 그립지 않았을까?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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