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 리뷰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를 읽고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는 선거가 곧 민주주의라는 고정관념을 깨라고 말한다. 합의의 도구였던 선거가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소수 엘리트의 정치적 입지를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로 변질되는 과정을 밝히고, 현재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진지하고 꼼꼼하게 짚어본다. 그리고 추첨을 통해 노동자, 농민, 전업주부 같은 보통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게 하는 제비뽑기를 대안으로 제시하며 질식 상태의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을 모색한다.
저자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
출판
갈라파고스
출판일
2016.01.18

 

선거철만 되면 한바탕 요란한 소동이 벌어진다.
정치인들은 저마다 거리로 나와 하루종일 연신 허리를 굽히며 시민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목소리 높여 자신을 뽑아달라는 구걸을 멈추지 않는다.
온 나라가 선거 플래카드와 전단지로 도배되고, 데시벨 높은 유세차의 소음은 온 국민을 한껏 짜증나게 만든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정책 경쟁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오직 상대방을 헐뜯는 뉴스만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
야비한 정치꾼과 시민들 사이에 속고 속이는 선거판! 결국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우리는 정치에 혐오감과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 좋다! 어찌됐든 그렇게 뽑힌 정치인들이 잘만 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선출된 정치인 대부분은 더이상 시민들에게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시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의 이권 다툼에만 혈안이 된다. 
금권 정치와 특권 정치가 판을 치는 선거, 우리는 과연 이러한 선거 제도 하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을까?


여기 선거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책이 나왔다. 
벨기에 출신의 문화사학자이자 고고학자, 그리고 작가인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이하 레이)가 쓴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라는 책이다. 
원제는 <선거에 반대한다>일 정도로 매우 도발적이다. 선거가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않으며, 그 대안으로 느닷없이 제비뽑기를 제안 한다.
제비뽑기라니, 이건 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농담같은 이 제안에 대해 레이는 매우 진지하다. 
19세기 니체가 ‘이제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세상 사람들의 의식을 망치로 깨부수었다면,
21세기 레이는 ‘선거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말로 세상 사람들이 신처럼 절대 신봉하는 반지를 모르도르의 운명의 화산에 던져버리려 하고 있다.

우리에게 선거는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는 곧 선거로 치환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오늘날 불거지고 있는 선거의 다양한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그저 운영 상의 실수, 결함 또는 결핍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선거에서 금권 정치를 타파하고, 미디어 환경을 올바르게 조성하기만 하면 언제든 본래의 모습인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것으로 믿어 온 것이다. 
하지만 레이는 “선거란 애초부터 민주적인 도구로 고안되지 않았고 이제까지도 줄곧 그래왔다”고 역사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혁명이 진행중이던 프랑스에서조차 선거 제도를 도입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사회 동요를 유발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었다. 심지어 선거(eletion)와 엘리트의 어원은 같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선거가 민주주의의 갈망 속에서 탄생하지는 않았다더라도, 근현대를 지나는 동안 선거제도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실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선거는 최소한의 독재를 막고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실현해 오지 않았는가. 
본질은 고정된 정의에서가 아니라 변화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성과 흑인에게도 투표권을 주기 시작했으며, 최소한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독일식 선거 방식을 선거 제도로 도입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이런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특히 주기마다 선거를 치른다는 점은 여전히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믿음을 지켜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선거는 그 본질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공공선을 추구하기 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고, 이에 따라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소모적인 알력 다툼만 일삼는다.
1%의 엘리트가 99%의 의회를 장악하는 등 대표성에도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거기에 자본주의의 모순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거의 의도를 무력화시키고 있으며, 자본과 결탁한 언론은 편향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쏟아내면서 결국 대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레이는 민주주의를 선거로만 축소함으로써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선거 불참, 선거 결과의 불안정성, 정당들의 출혈, 행정적 무능력, 심신의 진을 빼는 미디어 스트레스 등을 민주주의 피로감 증후군으로 명명하고, 그 원인을 ‘선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 탓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이에 대안으로 제안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제비뽑기이다. 
민주주의의 대안이 제비뽑기라니, 다소 황당하고, 느닷없고, 어이 없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레이는 과대망상자가 아니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제비뽑기가 선거보다 엉뚱한 사람을 선출할 가능성이 확률 상 훨씬 더 낮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표성까지 확보 할 수 있다고 한다. 

 

제비뽑기는 레이의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이미 역사 속에서, 그리고 현재에도 여러 분야에서 이미 활용되었던 정치적 도구이자 제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테네는 제비뽑기로 국정을 운영하였으며, 르네상스시대의 베네치아와 피렌체, 그리고 아라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테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비뽑기는 민주주의적이며, 선거는 과두정치적이다.”라고 말했다. 후대에 몽테스키외는 1784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법의 정신]에서 자신의 논지를 펴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2000년 전에 제시했던 분석을 다시금 차용했다. “추첨을 통한 투표는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적이며, 선택을 통한 투표는 본질적으로 귀족적이다.” 루소 역시, “추첨을 통하는 길이 민주주의의 본질에 훨씬 가깝다”고 주장하였다. 


어쩌면 민주주의라고 믿는 선거는 트루먼이 살던 세상처럼 허구이자 거짓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레이는 ‘굿바이 선거’를 외치며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인 제비뽑기에 주목했을 것이다. 제비뽑기는 분명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제도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정당 간에 이권 다툼보다 공공선을 추구하게 하며, 확률 상 시민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도 매우 탁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추첨 민주주의(제비뽑기)라는 제도를 과연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가?’이다. 
곧 제비뽑기라는 애들 장난 같은 놀이 수단으로 국가의 중대한 결정을 하는 사람들을 선출하는 것을 사람들이 과연 용인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레이는 당장은 선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병행될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상원과 하원으로 나눠진 경우 상원은 선거로 선출하되, 하원은 제비뽑기로 선출하자는 것이다. 또는 국회의원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항들에 대해서 임시적으로 제비뽑기로 뽑은 시민의회를 구성해서 어떤 결정을 해 나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실제로 캐나다에서는 제도적으로 추첨민주주의가 적용된 사례가 있으며, 그 운영도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얼핏 생각했을 때 우려되는 다양한 문제들, 즉 전문성, 책임성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실제 사례를 통해 반박하고 있다.  인간 사회는 사람들이 믿고 신뢰하는 상상의 사회 관계망 속에서 발전해 왔다. 종교, 자본주의, 그리고 선거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형성된 세계를 바꾸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현재 인간에게 있어 선거가 민주주의라는 믿음은 아직까지도 영원불변의 진리로 여겨지고 있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역사의 변화 과정 대부분은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기득권 세력들에 의한 방해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제비뽑기를 선택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제비뽑기 또한 당장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종교와 같이 형성된 사회적 신념을 깨는 것도 어렵고, 이미 선거를 통해 이득을 보고 있는 기득권 세력의 철의 관계망을 해체하는 것 또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비록 소수이지만 사람들이 상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제비뽑기가 우리 사회에 하나의 정치적 형태로 피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번 고개를 돌리는 것이 어렵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다보면, 결국 인간들은 자신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마련이다. 추첨 민주주의 또한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 중이라고 한다. 물론 추첨 민주주의가 절대적이거나 무조건적인 민주주의의 대안은 아닐 것이다. 
또한 선거라는 제도를 뒤집고, 갑자기 제비뽑기를 전면 도입하자는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는 분명 우리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최근 우리나라의 토론은 과거와 현재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오랜만에 신선한 미래를 엿볼 수 있게 돼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머지않아 선거대신 제비뽑기로 국회의원을 선출 할 날을 기대해 본다.

반응형
LIST

'도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를 읽고  (0) 2018.03.22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0) 2018.02.25
사피엔스를 읽고  (2) 2018.01.31
[불안] 현대인은 왜 불안한가  (1) 2015.08.05
반란의 도시를 읽고  (0) 2015.03.01